<3>“韓에선 3년 걸린 일, 日에선 7개월”

 

원문보기 ▶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24866

 

단말기 없이 스마트폰만으로 카드 결제가 가능한 ‘폰2폰’ 서비스를 개발한 황승익 한국NFC 대표. 올해 11월로 예정된 일본 시장 진출을 위해 도쿄 긴자 지역에 두 달째 상주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재무회계 시스템 업체 ‘MJS’가 지원해준 사무실과 숙소를 오가며 밤잠도 반납한 채 개발 작업이 한창입니다.

 

일본 업체 MJS와 황 대표의 한국NFC가 첫 인연을 맺은 건 지난해 10월 서울 강남에서 국내 핀테크 기업을 대상으로 열린 투자설명회(IR) 자리였습니다. 황 대표가 보유한 우수한 기술력을 한 눈에 알아본 MJS가 한국NFC에 30억원 투자 결정을 내린 게 올해 5월말. 협상을 시작한 지 불과 7개월 만에 일본 시장 진출에 성공한 것입니다. 같은 서비스의 국내 시장 진출이 겹겹의 규제 장벽에 막혀 창업 3년 만에 이뤄진 것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낀다”는 게 황 대표의 말입니다.

 

20억 허비한 규제 투어 혹은 뺑뺑이

2014년 4월, 당시엔 단어조차 생소했던 ‘간편결제’ 서비스로 국내 창업 시장에 뛰어든 황 대표가 지난 3년 여간 치른 ‘규제와의 전쟁’은 우리나라의 창업 시장이 ‘혁신’이라는 변화를 얼마나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황 대표가 보유한 기술은 크게 두 가지. 스마트폰에 내장된 근거리무선통신(NFC) 기능을 활용한 ‘간편결제 서비스’와 NFC를 활용해 신용카드만으로 본인 확인이 가능하도록 한 ‘본인인증서비스’입니다. NFC 기능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예가 교통카드인데, 이것과 유사하게 신용·체크 카드를 스마트폰에 대기만 하면 손쉽게 휴대폰 결제가 이뤄지고, 본인 인증도 가능하도록 하는 게 황 대표의 한국NFC가 가진 기술력이었습니다. ‘액티브엑스(ActiveX)’의 홍수 속에 살아가는 국내 소비자들 입장에서 스마트폰과 신용카드의 접촉 만으로 결제가 완료되는 한국NFC의 기술력은 가뭄에 단비만큼 반가운 서비스임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기술 개발 완료 후 찾아간 쇼핑몰 등 고객들도 환영 일색이었습니다.

시장 조사 및 특허등록 등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2014년 4월 창업에 나선 황 대표. 그러나 간편결제는 기술이 아니라 규제가 문제였습니다. 속된 말로 ‘뺑뺑이’, 황 대표는 ‘규제투어’라 표현하는 악몽이 그때부터 시작됩니다.

올해 초 스타트업법률지원단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자기 사업과 관련한 규제 경험을 털어놓고 있는 황승익(가운데) 한국NFC 대표

 

맨 먼저 황 대표는 제휴를 위해 찾아간 온라인 쇼핑몰에서 “카드사와 제휴를 해오라”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그 후에 찾아간 카드사는 “금융감독원의 보안성 심의를 먼저 받아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금감원에선 “보안성 심의를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불분명하니 이를 금융위원회에 확인해오라”라고 황 대표를 돌려보냈습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금융위·금감원 등을 수십차례 들락날락하며 6개월 만에 황 대표가 금융위로부터 들은 답변은 “서비스 신청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불굴의 황 대표. 보완성 심의 통과를 위해 그 자격을 갖춘 한 결제대행(PG) 업체와 제휴를 맺습니다. 수익을 절반으로 나누는 조건으로 겨우 얻은 ‘차명’ 신청 자격.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결제에 앞서 필요한 게 바로 ‘본인인증절차’. 황 대표의 핵심 기술력은 이 인증을 신용카드만으로 쉽게 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이 방식을 법에서 허용하고 있는 지가 불분명하다며 금융당국은 또다시 딴죽을 걸었습니다. 과거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기술로 훨씬 간편한 서비스를 만든 것인데, 이런 서비스가 과거에 존재했느냐고 묻고 있는 셈입니다.

황 대표의 이런 ‘규제 투어’는 그해 11월 국내 유력 언론을 통해 소개되고, 보도 당일 황 대표는 금융당국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습니다. “앞으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그날 바로 황 대표의 인증 방법이 법적으로 유효하다는 유권해석이 내려집니다. 창업 이후 7개월간 계속된 뺑뺑이가 언론 기사 하나로 해결된 셈입니다.

이런 소모전을 거친 후에도 황 대표는 시장에 관련 서비스를 출시하지 못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청와대가 직접 나서 한국NFC를 둘러싼 규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번엔 현실을 전혀 고려치 않은 막무가내 해법이 황 대표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정부는 황 대표를 괴롭혔던 ‘보완성 심의 기준’ 관련 제도를 2015년 폐지하고, 신용카드사의 자율 심의로 이를 대체했습니다. 결제대행사를 통해 겨우 신청자격을 얻었던 황 대표로선 신용카드사의 재심의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봉착한 것입니다. 금융당국이라는 시어머니를 피했더니 카드사라는 시누이 8명을 만난 형국. 갑작스레 보완 심의 및 그에 따른 책임을 떠안은 신용카드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한국NFC와의 제휴를 미뤘고, 또 다시 해를 넘겨서야 카드사 4곳과 겨우 업무 제휴가 이뤄집니다.

 

 

이런 난리통을 겪은 뒤 창업 2년 만인 2016년 5월 간편 결제 서비스를 내놓은 황 대표. 그 사이 국내 시장엔 ‘페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런저런 간편결제 서비스가 이미 28개나 나와 있었습니다. 이 서비스론 도저히 승부를 볼 수 없는 후발주자가 돼버린 상황에서 황 대표는 결국 ‘피봇팅’(사업모델 변경)을 결정합니다. 또 다시 수개월의 시간을 보낸 뒤 새롭게 내놓은 서비스가 이 글의 서두에 소개된 ‘폰투폰’ 입니다. 황 대표는 “2년동안 마케팅 비용 한푼 쓴 일 없이 인건비로만 20억을 썼다”며 “운 좋게 투자를 받아 버텼지만 인허가에만 2년이 걸리는 상황을 버틸 수 있는 스타트업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털어놨습니다.

 

 

마차 끌던 시대의 속도위반 딱지를 왜 자동차에 붙이려 하나

황 대표는 사실 기술력이 뛰어나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번잡한 본인 인증 및 인터넷 결제 과정을 신용카드와 휴대폰의 접촉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술력이 있어 외부 투자도 받았고, 원활한 ‘피봇팅’도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황 대표의 사례처럼 뛰어난 기술력으로 투자를 받고, 그래서 죽음의 계곡이라 불리는 사업 초창기를 버텨낼 수 있는 기업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실제 스타트업 미디어 ‘플래텀’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외부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은 총 313개사(투자 미공개사는 제외된 수치)로 국내 전체 벤처기업 3만3,360곳(정부 통계)의 0.9%에 불과합니다. 이태훈 서울산업진흥원(SBA) 투자지원팀장은 지난 1월 스타트업법률지원단 주최로 열린 정책 토론회에서 “적은 인력과 자본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는 청년 스타트업의 아이템 대부분은 세상을 바꾸는 혁신적인 기술이 아니라 기존 기술을 조금 다른 각도로 적용해 편의성을 높이거나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아직 세상에 나오진 않은 아이디어로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가는 게 대부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 아직 나오지 않은 아이디어로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가겠다고 나선 스타트업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바로 구시대에 만들어진 ‘규제’ 잣대입니다. 새 아이디어로 만든 제품·서비스를 옛날 법규를 들이밀며 금지하는 건 마차 끌던 시대의 속도위반 딱지를 자동차에 붙이는 격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

특히 최근 가장 많은 스타트업들이 뛰어드는 분야인 정보통신기술(ICT· 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은 산업의 특성상 융복합 성격을 띨 수밖에 없고, 그래서 다양한 소관 법령 및 각기 다른 부처가 서로 연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황 대표가 자기 사업의 규제 문제를 풀기 위해 금융위와 금감원, 방송통신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등을 매일 같이 오갈 수밖에 없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문제는 각 부처간 칸막이가 극심한 데다 당국간 이해관계도 달라 중간에 낀 스타트업 입장에선 복합 규제를 푸는 데 들어가는 심적·경제적 비용이 어마어마하다는 데 있습니다. 이정환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법률지원단 간사는 “스타트업들이 자신의 사업구조나 내용을 다양한 부처에 중복 설명해야 하는 어려움이 많으며, 그래서 창업가는 사업을 하기 전에 법률·규제 전문가가 돼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지적했습니다.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더 남아있습니다. 바로 스타트업의 혁신을 가로막으려 하는 기존 업계의 저항입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스타트업은 ‘블루오션’보다는 ‘니치마켓’(niche market·기존 시장 틈 사이에서 소비자 욕구가 존재하는 더욱 세분화된 시장)을 공략하는 사례가 훨씬 많습니다. 당연히 기존 시장을 점령해왔던 이해관계자와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황 대표 역시 ‘본인인증서비스’를 출시하는 데 있어 이 시장의 절대적 지위를 갖고 있는 이동통신사들의 교묘한 방해 공작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온라인 중고차 경매어플 서비스로 유명한 ‘헤이딜러’는 기존 오프라인 중고차 매매업체들의 극심한 반발로 홍역을 치러야 했고, O2O방식의 심야 셔틀버스 서비스 업체 ‘콜버스랩’도 택시조합과 갈등을 빚었습니다.

이 같은 이해 충돌 문제에 당면한 정부·지자체는 방관자에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론에 민감해 시장의 기존 이해관계자와 새로운 도전자 모두를 외면하기 어렵고, 이 때문에 둘 사이의 힘의 대결을 어설프게 중재하거나 다른 심판에게 떠넘기는 형태의 핑퐁 게임에 몰두하는 것입니다.

한경수 스타트업법률지원단장(변호사)은 “옛 규제를 그대로 적용하게 되면 결국 기존 이해관계자가 유·무형의 진입장벽을 만드는 데 쓰일 수 있다”며 “창의적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에 뛰어든 스타트업들을 기존 규제가 변경되기 전까지 불법이란 꼬리표를 달아 발목을 잡는 방식은 폐기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과 시민단체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바꿈), 창업 전문 뉴미디어 ‘비즈업’은 지난해 12월 ‘스타트업법률지원단’(스법단)을 발족했습니다. 스법단을 통해 대한민국의 건전한 스타트업 생태계의 조성·발전을 위한 법률 지원 및 교육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스토리펀딩의 ‘스타트업, 안녕하십니까’ 프로젝트를 통해 스법단 발족 이후 지금껏 법률 지원에 나섰던 스타트업의 부당한 규제 사례나 소송 사례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 발전을 위한 보다 깊이 있는 논의와 제언이 이뤄지길 희망합니다.

독자님께서 보내주신 소중한 후원금의 수익 일체는 규제의 늪에 허우적대고 있는 스타트업의 법률 지원 활동에 사용하겠습니다.

저희 스법단은 법적 분쟁 혹은 규제 문제 등으로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스타트업의 사연을 받고 있습니다. 스법단 홈페이지(www.startuplaw.kr)를 통해 상담을 의뢰하시면 관련 내용을 검토해 지원 여부를 결정합니다. 법의 늪에 허우적대는 스타트업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스법단의 문을 두드려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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