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갑’의 기술 베끼기에 속수무책, ‘을’ 스타트업

원문보기 ▶https://storyfunding.kakao.com/episode/25555

지난 2015년 설립된 자전거 제조 업체 A사의 대표이사 ㄱ씨. 몇 달 전 황당한 일을 겪었습니다. 본인 회사의 특허 기술 및 디자인을 그대로 베낀 자전거가 다른 회사의 로고를 단 채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목격한 것입니다. 그 자전거에 달린 로고는 ㄱ씨가 자기 자전거의 제작 의뢰를 맡긴 알루미늄 합금 제조 업체 B사의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B사는 부품 납품 및 조립 계약 체결을 통해 A사로부터 습득한 특허 기술 및 제조 기술을 그대로 베껴 A사의 자전거와 똑같은 제품을 양산하고 있었습니다. 지난해부터 A사 몰래 본인들의 상표를 등록, 홈페이지까지 새로 만들어 버젓이 판매에 나서고 있습니다. A사와의 거래 전까지 자전거를 한대도 제작해본 적 없는 B사는 국내외 박람회에 나가 본인들의 자전거를 독자 개발한 것인양 홍보했고, 최근엔 한 언론사 주최의 대회에서 대상을 받기로 했습니다. A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이 주축이 된 스타트법법률지원단(이하 ‘스법단’)의 도움 아래 B사를 특허법 침해 및 영업비밀침해 등의 혐의로 형사 고발했습니다.

A사의 소송 대리 업무를 비롯해 법률 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 김정욱 변호사

스타트업을 둘러싼 기술 탈취 논란

돈도, 인력도 충분치 않은 스타트업은 대한민국 산업 생태계에서 가장 취약한 집단입니다. 이런 ‘을의 지위’ 탓에 최근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게 바로 스타트업을 둘러싼 기술 탈취 논란입니다. 자본력이 튼튼치 않은 스타트업이 상대 업체와의 거래에서 끌려 다니기를 계속하다가 결국 기술력만 뺏기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A사의 사례처럼 말입니다.

A사가 B사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2015년 10월. 회사 설립 직후의 일입니다. 자전거의 기본 뼈대를 이루는 부품을 생산할 수 있는 업체를 찾던 중 지인으로부터 B사를 소개받았습니다.

당시 B사는 알루미늄을 활용한 주물 주조를 전문으로 하는 연 매출 150억원 가량의 알짜 회사였으나 자전거 부품 제작 경험은 전무했습니다. B사가 만든 샘플은 A사가 제공한 도면과 맞지 않았고, 부품도 뒤틀려 조립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A사는 계약 유지를 위해 수차례 대면 및 서면 협의를 통해 부품 개선 작업을 진행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A사의 특허 3개를 비롯해 자전거 제작에 필요한 사실상의 모든 사업 기술을 B사에 넘겨줬습니다. 어떻게든 자전거 제작에 필요한 부품을 손에 쥐어야 했던 A사의 입장에선 B사가 계약서 안의 ‘영업비밀 유지 조항’을 지킬 것이란 믿음에 의지하는 것 말곤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B사는 A사의 자전거에 욕심이 많았습니다. 계약 이행 과정에서 특정 지역의 판매 대리권을 요구했고, 이후엔 전체 영업권을 분배하자는 제안도 했습니다. 급기야 지난해 9월 A사 몰래 본인들의 상표를 출원했고, 곧바로 홈페이지도 개설했습니다. B사는 현재도 온·오프라인을 통해 A사가 제작을 의뢰한 자전거를 그대로 본뜬 자전거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자전거 제조 기술이 전무했던 B사가 1년 만에 자기 브랜드를 내건 자전거를 시판한 건 A사의 기술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반면 이 사실을 뒤늦게 알아챈 A사는 단 한 대의 자전거도 받지 못한 채 B사와의 계약을 원천 무효화하는 작업에 나서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습니다.

중소기업 기술 보호 역량, 대기업의 69%에 불과

위의 사례만 놓고 보면 A사의 부주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눈뜨고 코 베이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사건의 실체를 몰랐고, 계약 진행 과정에서 B사에 끌려 다니며 온갖 정보 및 기술을 넘겨준 실책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돈과 인력 모두 부족한 스타트업으로선 을의 입장에서 계약을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지위의 불평등에 따른 불합리한 요구를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합니다.

더 나아가 스타트업들은 자신들의 유일한 자산인 기술력을 좀 더 높이는 데 주력할 뿐 이 기술력의 보호에 필요한 자본의 투입엔 한계가 많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 한 정부조사에서 기술 유출을 경험한 중소기업은 지난 2012년 당시 조사 대상의 10.2%에서 2014년엔 3.3%로 줄어든 반면 기술 유출 1건당 평균 피해금액은 같은 기간 50% 가까이 급증(15.7원→24.9억원) 급증했습니다. 반면 중소기업의 기술 보호 역량은 대기업의 69.5%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런 중소기업에 비해서도 자금 여력이 훨씬 뒤쳐지는 스타트업의 기술 보호 역량이 어느 정도일 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저희 스법단에 도움을 요청한 업체 중엔 대기업과의 투자 계약 진행 과정에서 파산 위기에 처한 스타트업도 있습니다. 이 역시 을의 지위에 놓인 스타트업이 특정 계약에서 상대방의 무리한 요구에 얼마나 취약한 지를 살펴볼 수 있는 사례여서 이번 기회를 빌려 소개하고자 합니다.

O2O 자동차인테리어 개발업체 C사는 지난해 초 한 대기업(D사)의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됐고, 이후 D사의 한 자회사로부터 자산인수 제안을 받았습니다. 해당 대기업은 본인들이 발행한 책자에 스타트업과의 동반 성장 사례로 C사를 언급할 정도로 회사에 호의적이었습니다.

C사는 인수 논의가 이뤄지던 5개월 동안 수차례에 걸쳐 비밀유지계약서(NDA) 작성을 요구했습니다. 회사가 갖고 있는 핵심기술 및 가맹점 리스트 등 중요 정보가 D사 측에 모두 노출되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방어 장치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D사 측은 “자산 인수가 결론이 난 상태로 필요가 없다”며 이를 거부했고, D사와의 계약 체결에 사활을 걸고 있던 C사는 D사의 말에 끌려다닐 수 밖에 없었습니다. C사의 대표는 스법단과의 통화에서 “D사 측과의 논의 중간에 다른 업체 두 곳으로부터 투자 제안을 받았고, 그 중 한 군데와는 투자 확정서까지 작성했지만 D사의 요청에 의해 이것 역시 포기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최순실 사태가 터진 후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돌연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D사가 일방적 인수 협상 철회를 결정한 것입니다. 불과 8일 전 협상 실무자가 “사업 인수는 이미 합의된 사항”이라는 메시지를 건넸던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180도 태도를 바꾼 셈이다. 창조경제의 성공사례 가운데 하나로 손꼽은 C사를 최순실 사태 때문에 용도 폐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지만 D사 측은 “사업성 평가가 좋지 않았던 게 인수 결렬의 주된 이유였을 뿐 최순실 사태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수 논의 과정에서 C사의 핵심 기술 및 영업 비밀을 모두 빼갔지만 이 역시 “관련 자료를 모두 폐기해 영업 비밀 침해와 관련해서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자산인수 논의하던 대기업, 수일 만에 태도 돌변…파산 상태 직면한 스타트업  

결국 C사는 D사와의 협상 과정에서 급격히 늘어난 인건비 및 마케팅비 등을 온전히 떠안아야 했고, D사와의 협상 불발 이후 가장 큰 거래처로부터도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파산 위기에 몰렸습니다. C사의 대표는 “D사와 긍정적인 논의가 이뤄질 때만 해도 직원수가 23명 가량 됐으나 지금은 모두 퇴사하고 임원 정도만 남은 상태”라며 “D사를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는데, 그 결과가 좋지 않으면 파산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살펴보신 것처럼 스타트업은 지위의 한계 탓에 특정 계약이나 거래에 따른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앞서 언급한대로 인력이나 자본도 부족해 기술 유출 등의 피해를 방지할 사전 대책 마련도 쉽지 않습니다.

사전·사후 대처 모두 취약…“기술 유출돼도 조치 안 취했다”

더욱 안타까운 건 관련 문제가 발생한 이후의 대처도 취약하다는 점입니다. 막대한 소송 비용 등 사후 처리 절차를 밟는 데에도 돈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실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특허청의 2013년 조사에 따르면 영업비밀 유출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전체 조사의 31.1%에 달했습니다. 기술보호와 관련해 중소기업이 겪는 애로 사항으론 보안 전담 인력 부족(41.0%·복수응답), 보안 전문지식 부족(31.6%), 보안시설 부족(28.4%), 예산 부족(27.9%)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국가 차원의 기술 보호 정책이 부족한 점도 문제입니다. 특히 범정부 차원의 기술보호 컨트롤 타워가 존재하지 않아 부처간 공조 및 체계적 정책 수행에 한계가 많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실제로 중소기업의 기술보호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부처는 중소기업청·특허청·미래창조과학부 등 11개에 달하는데, 기술보호 관련 법률이 이들 부처에 각각 산재해 있어 정책의 유기적 연계 및 신속한 대응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의뢰로 지난해 작성된 연구결과보고서(중소기업 기술보호 역량강화 대응방안)는 “(기술 보호와 관련한) 각종 지원정책에 대한 기업 인지도가 2014년 기준 24.5%에 불과하다”며 “중소기업 기술보호 상담창구를 일원화하고 수요자 관점에서 지원 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C사의 법률상담 및 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 오세범 변호사

스타트업 입장에서도 자신들의 사실상 유일한 자산이자 가장 강력한 무기인 기술력을 보호하려는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스법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오세범 변호사(법무법인 다산)는 “스타트업 입장에서 대기업 등의 각종 제안은 달콤한 유혹일 수 있으나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초기에 NDA를 체결하는 게 매우 중요하고, 구두가 아닌 각종 근거 자료들을 어떤 형태로든 남겨놓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스타트업 법률 지원 위해 탄생한 스법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과 시민단체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바꿈), 창업 전문 뉴미디어 ‘비즈업’은 지난해 12월 ‘스타트업법률지원단’(스법단)을 발족했습니다. 스법단을 통해 대한민국의 건전한 스타트업 생태계의 조성·발전을 위한 법률 지원 및 교육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회에 걸쳐 진행된 스토리펀딩의 ‘스타트업, 안녕하십니까’ 프로젝트를 통해 스법단 발족 이후 지금껏 법률 지원에 나섰던 스타트업의 부당한 규제 사례나 소송 사례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 발전을 위한 보다 깊이 있는 논의와 제언이 이뤄지길 희망합니다.

독자님께서 보내주신 소중한 후원금의 수익 일체는 규제의 늪에 허우적대고 있는 스타트업의 법률 지원 활동에 사용하겠습니다.

저희 스법단은 법적 분쟁 혹은 규제 문제 등으로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스타트업의 사연을 받고 있습니다. 스법단 홈페이지(www.startuplaw.kr)를 통해 상담을 의뢰하시면 관련 내용을 검토해 지원 여부를 결정합니다. 법의 늪에 허우적대는 스타트업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스법단의 문을 두드려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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