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몰라라’ 판결에 가로막힌 청년 사업가의 꿈

“비겁한 판결입니다.” 

‘누구나 3D프린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20대 청년 사업가의 꿈이 구시대의 규제 장벽에 가로막혔다. 한편에선 3D프린터를 4차 산업 혁명’을 이끄는 신산업군으로 분류해놓고 정작 이 산업을 이끌어보겠다는 역군에겐 낡아빠진 법의 칼날을 들이대는 정부를 두고 이 청년은 (지원은커녕) 괴롭히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3D프린터 프레임 및 부품을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 사이트 삼디몰’의 김민규(27) 대표. 지난해 6월 한국제품안전협회로부터 안전 확인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형사 고발을 당했고, 검찰은 김 대표에게 300만원 벌금형으로 약식 기소 처분했다.  

이 사건을 맡은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형사2단독)은 9일 김 대표에게 벌금 100만원의 선고유예 결정을 내렸다. 벌금형만으로 직책을 잃을 수 있는 공무원 등이 아닌 일반인에게 벌금형의 선고를 유예하는 판결을 내리는 건 지극히 이례적인 일. 김 대표의 변호를 맡았던 한경수 위민 변호사는 재판부로선 무죄를 선고할 경우 법적 공백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한 것 같고, 그렇다고 김 대표를 형사처벌하는 건 맞지 않으니 나름 묘안을 낸 것인데 엄밀히 말하면 비겁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나몰라라’ 판결에 가로막힌 청년사업가의 꿈

이 사건의 쟁점은 이렇다. 구 전기용품안전관리법(현행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에선 안전확인신고를 해야 할 정보·통신·사무기기 등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프린터’다. 3D 프린터’에 대한 규정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기술표준원은 3D프린터’가 프린터’에 해당하며, 3D프린터의 프레임 및 부속 부품 등을 판매하는 삼디몰 역시 안전 확인 신고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고발 조치했고,  이에 대해 이번 1심 법원이 3D 프린터’를 프린터 유사기기’로 해석하며 김 대표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것. 

이 해석을 인정한다 해도 논란의 여지는 남아 있다. 관련 법은 안전확인대상전기용품을 제조한 사람’을 규제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를 적용하면 이번 사건에 삼디몰을 통해 3D프린터의 부품’을 구매해 직접 완제품으로 제조한 소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기이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법원 스스로 판결문에서 (이 사건은) 정책적 검토가 요구된다”고 밝혔을 만큼 법적 허점이 명백한 상황. 

형사재판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유추해석이 엄격히 금지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디몰 사건의 담당 재판부는 수 차례의 자의적 해석을 통해 낡은 시대의 규제 틀을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인 신산업군에 무리하게 적용시켰고,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청년 창업가의 앞길에 어깃장을 놓은 셈이 됐다.   

선고문을 읽어내려간 재판부 앞에서 김 대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망연자실 뿐이었다. 김 대표는 판결 뒤 가진 인터뷰에서 창업 전엔 경찰서도 한번 가보지 않았던 사람인데, 이런 재판까지 받게 돼 스트레스가 심했다”며 저같은 (돈이 없는) 학생들에게도 저렴하게 부품을 공급해 누구나 3D프린터를 사용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창업을 한 건데 불법이라고 하니 많이 착잡하다”고 말했다. 

김 대표 사건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과 시민단체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이 지난해 발족한스타트업법률지원단’(스법단)의 1호 지원 사례다. 대한민국의 건전한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발전을 위한 법률 지원 및 교육 캠페인 진행 등을 진행하고 있는 스법단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1심 재판부의 판결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소를 비롯한 다양한 구제 활동을 벌여나가겠다는 방침이다. 

3D프린터 부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인터넷 쇼핑몰 ‘삼디몰’의 김민규(우측) 대표와 삼디몰 사건의 변호를 맡고 있는 한경수 스타트업법률지원단장

한경수 변호사(스타트업 법률지원단장)는 기존 규제 체계가 현재의 시스템에 맞지 않는다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해야 하며, 적어도 신산업 분야에 대해선 새로운 접근 방식을 취해야 한다”며 일단 형식적으론 유죄가 나왔기 때문에 항소를 통해 상급법원의 더 구체적인 판단을 받아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사·사진= 비즈업 유병온 기자 on@bzup.kr, 영상 촬영·편집=비즈업 김경범 PD 

“마차 타던 때의 속도위반 딱지를 자동차에 붙이지 말라”

최순실 사태로 유탄 맞은 스타트업…바람직한 창업 생태계 성장위한 전문가 조언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잘 숙성된 술맛에 제대로 취하고 싶으면 말이다.

그런데 기껏 고생해 담근 술을 노린내 나는 헌 부대에 담는다면? 그간의 노력은 허공으로 날아가고, 다음날 숙취만 거세진다. 지금 대한민국 창업 생태계를 둘러싼 정부와 사회의 대응 방식이 꼭 그렇다.

10일 국회 의원회관 제 2세미나실. 제2의 전성기’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최근의 창업 열풍을 대한민국 경제의 새 동력으로 올바르게 자리매김시키기 위한 해법을 논의키 위해 정부와 정치권,  법률 전문가, 업계 관계자 등이 머리를 맞댔다. 최순실 사태와 청년 스타트업의 명암, 사전규제가 스타트업 기업 짓누른다’는 주제 아래 진행된 이번 정책 토론회에선 대한민국 창업 생태계의 양적 팽창과 질적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과 이를 뛰어넘기 위한 제언이 쏟아져 나왔다. 

참가자들이 내놓은 주장과 지적, 방안들은 각자의 시선에 따라 다양한 색깔을 띠었다. 그러나 각각의 목소리들이 일관되게 지적하고, 지향하는 지점은 이렇다. 스타트업이라는 새 술을 과거라는 헌 부대에 담지 말자는 것.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자는 것. 당초 예정 시간을 훌쩍 넘겨 3시간 여 가량 진행된 토론회를 비즈업이 정리했다. 

스타트업 규제 개선 방안 마련 정책 토론회
마차 타던 시절의 속도위반 딱지를 자동차에 붙이면 안 된다

대학생 창업자인 김민규 삼디몰 대표. 지난 2014년 4월 창업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경찰서를 근처도 가보지 않았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런 그가 지난해부터 경찰서와 법원을 제 집 드나들 듯 드나들기 시작했다. 

김 대표가 설립한 삼디몰은 고객들이 직접 3D프린터를 만들 수 있도록 인증을 받은 3D 부품’을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 사이트. 산업통상자원부는 전기용품안전관리법이 규정하고 있는 안전 인증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김 대표를 형사 고발했다. 3D 프린터’에 대한 법 규정이 전무한 상황에서 일반 프린터’ 규제 조항을, 그것도 3D 프린터 완제품’이 아닌 3D 프린터 부품 업체’에 적용한 것. 

김 대표는 제 상황을 문의했더니 인증 표준 콜센터나 미래창조과학부에선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산자부와는 전혀 다른 판단을 내려줬다”고 전했다. 3D 프린터’라는 신산업군에서 발생한 규제 이슈에 대해 정부 간에도 엇갈린 해석을 내놓고 있는 셈이다.  

‘최순실 사태와 청년 스타트업의 명암, 사전규제가 스타트업 기업 짓누른다’ 토론회에 참석한 김민규(가운데) 삼디몰 대표와 박병종(왼쪽) 콜버스랩 대표, 이번 토론회 사회를 맡은 전진한 바꿈 상임이사

김 대표의 사례는  과거엔 존재하지 않았던 신산업에 옛날 잣대를 들이댄 전형적 케이스다. 마차 타던 시절의 속도위반 딱지를 자동차에 붙인 격. 전문가들은 스타트업의 태생적 특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낡은 조치라고 지적한다. 새로운 기술 및 아이디어로 기존 산업에 도전하는 게 스타트업의 역할인데, 정부가 이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 

정부가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선정,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는 ICT (정보통신기술) 산업군에서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한 지경에 봉착한다.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O2O(온라인·오프라인 연계) 등 요새 잘나간다는 이른바 신산업군은 불과 수년 전만 해도 단어조차 거론되지 않았던 것들이며, 기존 산업 분류로는 제대로 구분조차 하지 못하는 융합사업’적 특성도 갖고 있다. 과거의 낡은 규제를 적용하려야 할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게 ICT군의 스타트업 생태계인 셈이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의 이정환 법률지원단 간사(변호사)는 보통 회색 시대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스타트업으로선 기존 법률을 적용하려는 정부 탓에 현실에 맞지 않은 규제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며 ICT는 융합산업의 특성 때문에 다양한 소관법령과 연계돼 있고, 이 때문에 정부 부처별로 문제로 삼는 이슈와 입장이 달라 애를 먹는다”고 전했다. 

토론회 발제를 맡은 한경수 스타트업 법률지원단장(변호사)은 전통 산업에 적용했던 규제가 신산업 분야에도 효율적일 것이라고 볼 수 없으며, 각 산업의 특성에 맞게 규제 체계를 정비하는 것은 시대 과제”라며 적어도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ICT 등 신산업 분야에선 네거티브’ 방식으로 규제 체계를 변경할 필요가 있다”는 해법을 내놨다. 네거티브 규제’란 안 되는 것 빼곤 다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현행 대한민국의 규제 시스템은 허가된 것만 할 수 있는 포지티브’ 방식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초 열린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신산업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는 예외적으로 네거티브 방식을 도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도입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한경수 스타트업 법률지원단 단장(변호사)
새로운 길엔 꼭 걸림돌이 있다

O2O방식의 심야 셔틀버스 서비스 업체인 콜버스랩’. 밤 늦은 시각, 귀가를 위해 십수번의 승차거부와 바가지 요금을 감내해야 했던 올빼미족들에게 콜버스랩은 가뭄에 내린 단비였다. 이용자들이 이렇게 기다려온 서비스가 있나 싶을 정도인데, 정작 콜버스랩을 운영하는 박병종 대표는 사업이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고 토로한다. 

콜버스랩을 가로막고 있는 표면적’ 방해꾼 역시 낡은 규제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핑퐁 게임을 하며 회사의 운영 방식 이것저것을 지적했고, 그 사이 박 대표가 애당초 품었던 사업 모델은 사상누각의 위기에 봉착했다.  

그러나 콜버스랩의 실질적’ 장애물은 따로 있다. 택시조합 등 이해관계자와의 충돌이 근원적 문제다. 콜버스랩 탓에 자기 이익이 줄어들 위기에 놓인 택시단체들이 유명 일간지 1면에 콜버스는 불법 서비스’라는 내용의 광고를 낼 정도로 저항은 극심했다. 여론의 눈치에 민감한 정부·지자체는 시장의 기존 이해관계자와 ‘뉴 챌린저’ 모두를 외면하기 어렵다. 결국 둘 사이의 힘의 대결을 어설프게 중재하거나 다른 심판에게 떠넘기는 형태의 핑퐁게임만 하게 된다. 

‘이해관계자와의 충돌 문제’ 역시 스타트업 생태계가 풀어야 할 중요하고도, 난해한 숙제다. 오프라인 중고차 매매업체들의 거센 반발을 산 온라인 중고차 경매어플 서비스 업체 헤이딜러’. 인터넷에서 신용카드만으로 본인인증을 할 수 있는 매우 간단한 방법을 개발하고도, 관련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이동통신사의 조직적 방해 탓에 2년 넘게 서비스를 출시하지 못한 채 정부 인·허가만 받고 다닌 한국NFC’. 새로운 길을 닦으려는 스타트업들이 이해관계자라는 걸림돌에 걸려 좌초 위기를 맞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이 문제에 대해 이태훈 서울산업진흥원 투자지원팀장은 “대개의 스타트업 아이템은 지금껏 세상에 존재치 않았던 혁신을 내놓는 게 아니라 기존의 것을 조금 다른 각도의 아이디어로 현실화한 것”이라며 이는 기존 레드오션 시장에 진입할 확률이 높고, 그만큼 기득권의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도 많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최순실 사태와 청년 스타트업의 명암, 사전규제가 스타트업 기업 짓누른다’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 왼쪽부터 이태훈 서울산업진흥원 투자지원팀장, 양경준 케이파트너스앤글로벌 대표, 황승익 한국NFC대표, 이정환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법률지원단 간사(변호사)

사실 ‘이해관계자 vs 뉴 챌린저’간 대결은 사람이 먹고 사는 밥그릇 문제여서 쉽사리 풀 수 없다. 다만 이 문제를 푸는 데 있어 주안점을 둬야 할 부분에 대해 고객이 중심이다. 고객이 어떠한 제품·서비스를 이용하는데 편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가지고 판단하면 된다”고 한 이태훈 팀장의 조언은 새겨둘 만하다. 얼핏 당연한 지적처럼 들리지만 실상 신구산업간 충돌에서 항상 포커스를 둔 것은 양쪽 세력 그 자체였지, 사이에 낀 고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말뿐인 ‘창조경제’는 이제 그만…창업 활성화를 위한 진짜 정책이 필요하다

이번 토론회에선 일련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말미암은 창조경제의 몰락, 이 때문에 예기치 않은 유탄을 맞고 있는 스타트업에 대해서도 여러 목소리가 나왔다.

한경수 변호사는 슬로건에 그친 창조경제 정책 때문에 박근혜 정부의 경제 지표는 역대 최저 경제성장률, 역대 최고 실업률, 역대 최대 가계부채 등 3관왕을 기록했을 정도로 최악이었다”며 창조경제에 대한 철학의 부족, 대기업을 억지로 동원한 관치 경영 등이 실패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박병종 콜버스랩 대표는 최순실 사태로 스타트업이 두려워하는 건 지금까지의 창조경제 동력이 떨어져 청년 창업 기업들의 지원이 사라지고, 그래서 창업을 도외시하는 문화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라며 벤처기업들은 정권이 바뀌면 칼바람이 불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야당 입장에서도 창업 정책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순실 사태와 청년 스타트업의 명암, 사전규제가 스타트업 기업 짓누른다’ 토론회를 공동주최한 변재일(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의원

토론회의 공동 주최자인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술 산업의 육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김대중 정부 때의 벤처기업 육성부터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까지 방향성은 같다”며 창업 활성화 정책과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은 어느 정부가 들어서더라고 외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는 스타트업 법률 지원단’(스법단)과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법률지원단, 변 의원이 공동주최했다. 스법단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과 시민단체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이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건전한 생태계 조성 및 발전을 위한 법률 지원, 교육 캠페인 진행 등을 목적으로 지난해 말 설립한 단체다. 창업·자영업 전문 뉴미디어 비즈업’은 이번 토론회를 비롯, 앞으로 전개될 스법단의 활동 전체를 밀착 취재해 동영상 등 깊이있고 다채로운 디지털 콘텐츠로 소개할 예정이다. /기사=비즈업 유병온기자 on@bzup.kr, 사진·영상=백상진기자 100pro@bzup.kr  

스타트업의 재고 떨이 현장 “올해 1년 버텨내느라 고생했어요”

국내에서 첫 시도된 ‘스타트업 박싱데이’ 행사…방문객 3,000여명 등 흥행 거둬

“무료로 체형 교정해드립니다. 지금 마사지 받고 가세요.”
“애플리케이션(앱)만 깔면 토마토 수프 하나 드려요. 맛있는 떡볶이도 드셔보세요.”

지난 17일 오후 서울 중구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알림 2관에 마련된 스타트업 박싱데이’ 행사장.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파격 할인’이나 오늘만 무료’ 등의 홍보 구호가 들려온다. 관람객들은 테이블 가득 쌓인 초소형 화분이나 친환경 섬유유연제, 반려동물용 자동 급식기 등을 구경하며 행사장 곳곳을 둘러본다. 행사장 가운데 설치된 무대에선 선배 창업가들이 마이크를 들고 자신만의 사업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고, 그 주변을 둥글게 둘러앉은 예비 창업가 사이에선 성공 창업을 향한 젊음의 열망이 뿜어져 나온다.  

지난 17일 열린 ‘스타트업 박싱데이’ 행사장 모습. 이날 행사에는 스트라입스, 콜버스, 클래스픽, 리화이트, 짐카, 주렁주렁, 핑크퐁 등 70여개 업체가 참여해 업체 홍보 및 할인 판매 이벤트를 열었다.

‘박싱데이’(Boxing Day)란 본래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12월 26일에 옛 유럽의 영주들이 지역 주민들에게 선물이 담긴 상자를 전달하던 관행에서 유래된 것으로, 미국·유럽의 상점들은 연말이 되면 한 해의 재고를 없애기 위한 대규모 할인 판매를 해왔다. 페이스북의 청년 창업 모임 스타트업, 식사는 하셨습니까?’(약칭 스밥’)와 서울특별시, 서울산업진흥원(SBA)의 공동주최로 진행된 이번 ‘스타트업 박싱데이’ 행사엔 70여개 국내 스타트업이 참여해 각자의 제품·서비스를 30~50% 할인 판매하거나 무료 제공하는 방식으로 꾸려졌다. 스밥’을 이끌고 있는 양경준 케이파트너스앤글로벌 대표는 최악의 상황이었던 올해를 버텨낸 스타트업계의 생존을 축하하고 일반 시민들에게 홍보도 하기 위해 이번 행사를 준비하게 됐다”고 기획 취지를 설명했다.

스타트업 박싱데이 2016

박싱데이 행사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각 업체의 홍보 부스를 돌아보며 상품 설명을 듣고 있다.

실제 올 한 해 스타트업계는 쉽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가뜩이나 어려워진 경제 상황에 정치적 혼란까지 가중되며 악재가 겹겹이 쌓였기 때문. 먼저 세계적 경기 침체로 내수 시장이 위축되며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는 소비 절벽’ 현상이 나타났다. 경제 상황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나타내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지난달 95.8을 기록하며 글로벌 금융위기 때였던 2009년 4월 이후 최저치로 집계됐다.

경기 침체는 민간의 벤처투자 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쳤는데, 여기에 스타트업계의 거품 붕괴에 대한 우려가 더해지며 벤처캐피털(VC)의 돈줄이 마르기 시작했다. 중소기업청이 발표한 2016년 상반기 벤처펀드 투자동향’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처펀드 결성액은 통계집계 시작 이후 최고치인 1조6,682억원을 기록했으나, 실제 집행된 투자금을 의미하는 신규투자금액은 지난해보다 4.5% 줄어든 9,488억원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대한민국을 강타한 최순실 게이트’는 안 그래도 식어있던 투자 열기에 찬물을 끼얹은 결정타로 작용했다. 국정농단 사태에 박근혜 정부의 역점 사업 중 하나인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입주기업에 대한 지원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같은 삼중고로 신음하던 스타트업계에 이번 박싱데이 행사는 남은 재고를 정리하고 한풀 꺾였던 업계 분위기를 북돋기 위한 단비’와 같은 자리였다. 

이날 행사 중반에는 파일전송 앱 ‘선샤인’ 서비스업체 ‘스파이카’의 김호선 대표와 가정식 배달업체 ‘더반찬’의 전종하 대표가 연사로 나선 강연이 진행됐다.

행사 준비와 실무를 담당한 20여명의 운영진 역시 이런 취지에 공감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업계 종사자들로 꾸려졌다. 김탄휴 박싱데이 운영위원장은 운영진들 모두 본업이 따로 있는 상황이지만 업계의 발전과 대중 홍보를 위해 자원봉사 형태로 참가하게 됐다”고 말했다. 참여업체 중 한 곳인 샐러드 배달업체 프레시코드’의 유이경 공동창업자는 스타트업의 경우 회사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한 편인데 이번 박싱데이를 통해 직접 고객들을 만나고 피드백까지 받을 수 있어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이날 행사장을 찾은 관람객은 총 3,000여명. 일반 시민 외에 벤처투자자와 예비창업가의 발길도 이어졌다. 박싱데이 관람을 위해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예비창업가 박소영씨(26)는 취업이 갈수록 어려워지다 보니 창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오늘 다양한 분야의 업체를 접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어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참여사들의 제품·서비스 판매 외에도 사업에 대한 조언과 투자 가능성을 심사해주는 VC 상담 이벤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시민단체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이 추진하고 있는 스타트업 법률 지원단’의 무료 법률 상담 등이 진행됐다. 행사 중반에는 선배 창업가들이 투자 유치와 영업, 인사관리 등 회사 운영 전반에 관한 조언을 전하는 강연도 이어졌다. 연사로 나선 김호선 스파이카’(파일전송 앱 선샤인’ 서비스업체) 대표는 어려운 경제 상황이지만 용기 있게 스타트업에 뛰어든 후배들이 힘을 내 성장해가길 기원한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김 운영위원장은 처음 시도하는 행사라 준비나 운영 등에 미흡한 점이 많았지만 참여한 분들이 즐거워해 주시니 감사할 뿐”이라며 이번 자리를 발판삼아 스타트업 문화를 더욱 알리고 시민들과 교류할 수 있도록 노력해가겠다”고 전했다. 

/기사= 비즈업 조가연 기자 gyjo@bzup.kr 
사진∙영상 촬영 및 편집= 비즈업 백상진 기자

“배고픈 스타트업 밥 먹으러 오세요”

스타트업의 축제 한마당 ‘스타트업 박싱데이’ 앞둔 ‘스밥’ 인터뷰

수은주가 영하권을 맴돌던 지난 8일 저녁 서울 대치동의 한 고깃집. 지글지글 삼겹살이 익어가는 불판을 사이에 두고 벤처투자자들과 예비창업가들이 마주 앉았다.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다 보니 초반의 어색했던 분위기가 어느새 부드러워진다. 한 예비창업가가 창업의 고충을 털어놓는 사이 맞은 편에 앉은 투자자가 잘 익은 고기 한 점을 집어 상대의 접시 위에 얹어준다. 페이스북 청년 창업 모임 스타트업, 식사는 하셨습니까?’(약칭 스밥’)의 풍경이다. 

‘스밥’은 빠듯한 주머니 사정으로 고생하는 스타트업이나 예비창업가(게스트)에게 업계 선배(호스트)가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하는 자리다. 지난해 7월 첫 한 끼’를 시작으로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8일 저녁 서울 대치동의 한 고깃집에서 열린 67번째 ‘스밥’ 모임. 사진 왼쪽부터 양경준 케이파트너스앤글로벌 대표, 김승규 서울산업진흥원 책임, 이범석 파트너스인베스트먼트 상무, ‘풋온아트’의 신은영·김태인·김동진 예비창업자, 이태훈 서울산업진흥원 기업투자센터장.

이날은 67번째 스밥 자리. 유럽의 디자이너 작품을 국내 소비자들에게 소개·판매하는 아트 플랫폼’을 준비 중인 예비창업팀 풋온아트’가 게스트로, 식사를 대접하는 호스트로는 이범석 파트너스인베스트먼트 상무와 이태훈 서울산업진흥원 기업투자센터장, 김승규 서울산업진흥원 책임, 양경준 케이파트너스앤글로벌 대표가 자리했다. 스밥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하고 매회 만남을 주도해온 양 대표는 스타트업 후배들이 회식 한 번 마음대로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이런 모임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회사 운영비도 부족하고 당장 직원들 월급 주기도 바쁜 게 스타트업계의 현실이잖아요. 그런 상황에선 자기들 돈으로 회식 한 번 하기도 어렵거든요. 내가 따뜻한 밥 한 끼라도 공짜로 사준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겠다 싶더군요. 그래서 밥 먹고 싶은 스타트업이면 누구든 신청하라’는 글과 함께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하게 됐어요.”

‘스타트업, 식사는 하셨습니까?’의 페이스북 페이지

이렇게 시작된 스밥 모임엔 현재 가입자만 5,600명이 넘는다. 공짜 밥’이 간절한 스타트업 종사자들이 대다수지만, 어려운 후배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겠다며 자발적으로 모여든 선배 창업가나 투자자들도 적지 않다. 페이스북 페이지 관리와 모임 진행은 모두 자발적으로 참여한 운영진들이 관리하고 있다. 양 대표는구속력이 있는 조직도 아니고 다른 혜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자기 일처럼 스밥 운영을 도와주고 있다”며스타트업계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가진 이들이 모인 곳, 그게 스밥”이라고 덧붙였다. 

‘스밥’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모임 후기 사진들

양 대표가 밝힌 이날 스밥의 기본 원칙은 무조건 공감하기’. 벤처투자자와 창업가들이 함께하는 자리다 보니 자칫 투자 심사’를 받는 것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호스트로 참석한 이 상무는 사업 모델이 뭔지, 어떻게 수익을 낼 건지 그런 거 다 물어보지 말고 그냥 친형처럼 공감만 하라는 사전 교육’을 받고 왔다”며 투자심사하던 버릇이 나올까 봐 걱정이 됐지만 막상 와보니 그동안 몰랐던 창업가의 어려움을 듣게 돼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갑 얇은 창업가들의 마른 목과 허기진 배를 달래주기 위해 시작된 스밥. 하지만 스밥이 단순히 식사 한 끼를 해결해주는 데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하고 업계 교류를 위한 자리를 최근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 대표는 서울시와 공동주최로 스타트업 박싱데이’란 행사를 개최하게 됐다”며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웠던 올 한해를 잘 버텨낸 스타트업계 사람들이 위로받을 수 있는 행사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오는 17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스타트업 박싱데이’ 안내 포스터

서울시와 스밥의 공동주최로 오는 17일 오전 10시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스타트업 박싱데이’는 50여개의 스타트업이 참가한다. 방문객들은 이들의 서비스와 제품을 30~50% 할인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업계 네트워킹을 위해 행사 중반 선배 창업가들의 강연이 이어지며, 오후 2시 30분부터 약 한 시간 동안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진행하는 토크콘서트가 예정돼있다. 사업에 대한 조언과 투자 가능성을 심사받고 싶은 스타트업들을 위한 벤처캐피탈(VC) 상담 이벤트가 마련되며 스타트업 법률 지원단’의 법률 상담도 준비돼있다. 

스타트업 박싱데이 운영팀 김탄휴 마이리틀유니버스’ 대표는 처음 진행하는 대형 행사라 부족한 점이 많을 수 있지만 이번 박싱데이를 계기로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만드는 스타트업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며 스타트업을 위한 축제의 자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입장은 무료로 진행되며, 참여를 원하는 일반인은 행사 당일 등록부스에서 참가 신청을 할 수 있다. 

/기사∙인포그래픽= 비즈업 조가연 기자 gyjo@bzup.kr